아래로 거슬러 오르는 리서치 연습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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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2.21

 

 

 

황예지 죽은 자에 대해서 다시 얘기를 하자면, 아까 언급했던 책<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에 세네갈로 돌아가서 우물 옆을 지키겠다고 선언하는 친구가 나와요. 이 친구는 부모님이 학살을 경험한 캐릭터예요. 그래서 그가 죽음이 본인에게 말을 건다고 말하는 구간을 발췌했는데요. 죽음 옆에 서 있다는 것은 무엇일까? 내 땅, 내 어머니, 내 가족들이 죽은 자리 옆에 서 있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하게 하는 선언적인 문장들입니다.

“자. 어린 고아, 가도 좋다. 나도 너와 똑같았지. 난 너보다 더 어릴 때였어. 그때 내 안에 그 무엇으로도 끌 수 없는 분노가 타오르기 시작했고, 지금 나를 살아 있게 하는 건 바로 그 분노의 불이야. 너도 나처럼 해. 날 증오하고 분노하라고. 강해지고, 전사가 돼, 살해자가 되고, 어느 땅에 가든 피를 뿌려. 크거든 날 찾아오고. 네 어머니에게 끔찍한 고통을 안긴 대가를 치르게 해야지. 지금껏 내 손끝에서 네 어머니처럼 고통을 참아낸 사람은 없었지. 가거라, 아들. 가거라. 죽음은 이 모든 것을 아주 고요한 목소리로 말했어. 그런 뒤에 기독교의 성호를 그었고, 그냥 그렇게 가버렸어. 유령들을 쫓아버려선 안 돼. 불가에 모여 앉은 유령들을 찾아가야 해. 뼛속에 사무친 공포를 달래 가며, 이를 덜덜 떨면서, 겁에 질려서, 될 대로 되라 무조건 자리 잡고, 그렇게 내 몫을, 과거의 모든 몫을 챙겨야 해. 해지 명령 따위 집어치워! 해지가 명령이라니, 가증스럽잖아. 해지! 해지! 닥쳐!”

저는 여기서 식민지 경험이 있는 국가의 창작자들이 인지해야 하는 이야기가 굉장히 명료한 언어로 적혀 있는 걸 발견했거든요. 

“너는 내 말에 동의하지 않으리라는 거 알아. 너는 언제나 문화적 모호성이 우리의 진정한 공간이라고 생각하지. 우리는 그 자리에서 비극을 받아들이고 문화적 사생아로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고. 그래. 다른 역사들을 죽이는 역사가 우리의 역사를 범했고 그 강간에서 우리가 태어났으니, 더할 나위 없는 사생아이기는 하지. 단지, 난 네가 모호성이라고 부르는 게 지금 진행 중인 우리의 파괴를 가리는 술책일 뿐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생각을 해.”

세네갈과 프랑스의 문화적 사생아 이야기지만, 이 단어들 안에 뭐든 다 넣어볼 수 있는 것 같아요. 한국과 일본, 거대 담론과 작은 담론을 넣어볼 수 있고요. 이렇게 강간당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강간’이란 표현이 드셀 수 있지만요. 이 잔인함 앞에서 창작자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계속 의심하고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제가 만약에 보먼트 뉴홀이 주장하는 ‘사진의 역사’를 너무 진하게 믿는 사람이었다면, 어떤 사진을 찍었을지 두렵거든요. 어쨌든 역사라는 건 살아있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유리하게 쓴 기술이죠. 죽은 사람은 역사에서 말할 수 있는 범위가 없어요. 그래서 내가 보고 듣는 것들이 어떤 담론인지, 어떤 담론과 어떤 담론 사이에 서 있는지 계속해서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느껴요.

그렇다면 죽은 자를 소외시키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죽은 자에게 말 걸기’가 어떻게 작품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작년에 했던 개인전에서 이폴리트 바야르, 사진의 역사에서 가장 비루하고 남루하게 나온 최초의 셀프 포트레이트를 찍은 남성에게 편지 쓰듯이 작업했었고요. 그렇게 비참하게 비춰지는 그 사람은 과연 정말로 비참했을까? 혹은 비참함으로 할 수 있는 저항은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작업했어요.

 

 

 

노순택, <얄읏한 공(2006)>

 

노순택, <얄읏한 공(2006)>

 

저는 산 자에게 영예를 안기기보다는, 죽은 사람들에게 뭔가 듣고 싶어요. 그런 예시로 한국에서 ‘땅’과 ‘경로’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작품 몇 개를 뽑아와 봤거든요. 첫 번째로 언급하고 싶은 작품은 노순택의 <얄읏한 공(2006)>이라는 사진 시리즈예요. 이 사진 시리즈는 ‘땅’에 관한 것이에요. 이 연작이 찍힌 장소는 팽성읍 대추리라는 공간이에요. 어느 날 갑자기 대추리에 미군의 군사 시설이 들어오거든요. 레이더와 돔을 결합한 레이돔이라는 군사 시설이에요. 이 돔이 무얼 하고 있는지 주민들은 알 방법이 없었고, 계속해서 주민들의 일상과 동그란 원이 겹쳐요. 이 미심쩍은 공 자체를 얘기하고 싶어서 <얄읏한 공>이 제목이 되었다고 해요. 

한국에도 자연스럽게 식민의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던 것 같아요. 제일 무시무시한 건 미군 시설이죠. 용산에도 있었고, 용산에서 이전되면서 그곳이 공원이 되는데, 땅에 어떤 물질을 감췄는지 알 길이 없고, 부산에서는 미군이 실수로 발송한 탄저균이 발견되고. 정말 무서운 건 이러한 사건들이 사소하게 지나간다는 점이에요. ‘이건 별일 아니고, 미군은 우리를 지켜주고 있어’라는 인식이 여전한 것 같아요. 그런 공포감을 다큐멘터리 사진이 가진 최선의 방식으로 보여줬기 때문에, 이 작품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사진이 모든 걸 발각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낭만적인 이야기만 하기엔 너무 무시무시한 현재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오히려 과거에 발행됐던 다큐멘터리 사진들을 바라보면서 지금의 상황들을 부대껴 하는 것 같고요. 이러한 이미지가 과연 팽성읍 대추리에서만 일어나고 있을까? 생각해 보면 아닌 것 같아요. 우리가 문만 열고 나가도 볼 수 있죠. 이 무시무시한 현실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까? 그 안에서 기록은 어디로 가야 할까? 


 <얄읏한 공>이 고전적인 방식으로 땅을 수호하려는 움직임이었다면, 홍진훤의 <멜팅 아이스크림(2021)>은 죽은 자들을 불러내는 작품이에요. 민주화 기념사업회에서 어느 날 수해 필름이 발견돼요. 이 손상된 필름 안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거죠. 이 필름의 복원 과정이 다큐멘터리에 담겨 있어요. 그때 활동했던 사진가들의 진술과 증언들이 또 섞여 들어오거든요. 그 와중에 참세상이라는 곳의 푸티지들도 사용돼요. 푸티지는 화질이 엉망인 비정규직 철폐 운동의 시위 현장, 열사들의 죽음 이미지예요. 그 열화된 이미지와 수해 필름과 증언들이 뒤섞이면서 ‘민주’라는 단어가 녹아내리는 느낌이 들어요. 굉장히 빛나고, 우리에게 질 좋은 사회를 만들어 준 것만 같았던 그 ‘민주’라는 단어가 계속해서 녹아내리고, 그때 활약했던 영웅들은 정말 흘러내리는 게 느껴져요. 그런 이상한 기이함과 기시감이 계속 발견되는 영화입니다. 이제는 이런 과격한 시위를 볼 상황은 많이 없을 것 같긴 해요. ‘촛불 시위’라는 평화로운 시위 방식이 사회를 따뜻하게, 어떻게 보면 오묘한 방향으로 따뜻하게 만들었고, 더는 이런 과격한 움직임은 없겠죠.

이러한 장면이 대체 우리에게 뭘 남기고 갔을까요? 작가는 죽은 자, 망령이라는 존재들을 왜 굳이 이 시대에 불러낼까요? 거기에 유달리 눈이 가요. 처음에는, 이 작업이 트랜스하고 테크노 같다고 편하게 생각했어요. 열화된 이미지들이 계속 반복되니까, 그냥 트랜스 상태가 되는 느낌뿐이었는데요. 점점 제 몸에서 어떤 것들이 올라왔어요. 굉장히 부끄럽다. 이 반복되는 패배감 안에서 내가 뭘 할 수 있지? 책에서 본 묘지를 지키는 사람처럼 영적인 비상 상태까지도 갔어요. 왜냐하면 이건 픽션이 아니니까요. 이러한 작품들이 제가 리서치를 계속하게 이끌었어요.


 

홍진훤, <멜팅 아이스크림(2021)>
홍진훤, <멜팅 아이스크림(2021)>

 

<멜팅 아이스크림>에는 짧은 노트들로 연결해서 써놓은 작업 노트도 있어요. 그중에서 같이 읽어보고 싶은 부분을 발췌해 왔어요.

“피범벅이 된 사람들이 길거리를 나뒹굴고 있었다. 무슨 연유에서인지 흥분한 경찰들은 곤봉과 방패로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해댔다. 조그만 모니터를 통해 목격한 장면은 이해할 수 없는 것들투성이였다. 정리해고에 반대하는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노동자들과 그의 가족들이라고 했다. 그들이 왜 두들겨 맞고 있는지보다 더 궁금했던 것은 노벨평화상을 받은 인권운동가가 대통령인 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장면이 가능한가였다. 무엇인가를 이해하기에는 취임식에서 국민을 위해 눈물을 흘리던 그의 모습이 여전히 생생했다. 그때가 처음이었다. '민주'라는 단어에 의심을 품기 시작한 것이.”

“ '비정규직'이라는 단어도 낯설었던 시절, '비정규노동자대회'라는 생소한 이름의 집회가 대학로에서 열린다고 했다. 여느 때와 같이 카메라를 들고 무대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집회를 구경했다. 어디선가 짧은 비명이 몇 번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사람들 위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근로복지공단에서 일하는 이용석이라는 사람이라고 했다. 또 한 명의 노동자가 죽었다. '비정규직을 철폐하라'고 외치며. 도망치듯 집회장을 빠져나왔다. 처음으로 사람 타는 냄새를 맡았다.”

“최대림, 이상관, 박용순, 최옥란, 박봉규, 천덕명, 배달호, 박상준, 송석찬, 이현중, 이경해, 박동준, 김주익, 이용석, 곽재규, 성기득, 박일수, 장상국, 김춘봉, 김태환, 류기혁, 김동윤, 오추옥, 전용철, 홍덕표, 하중근, 남문수, 전응재, 허세욱, 이근재, 정해진. 너무 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하게 되었다.”

정확히 이름 석 자가 작품에 소환되는 경위가 좋았거든요. 저라면 나열하지 못할 이름들의 조합이었어요. 왜냐하면 저는 어떤 열사들이 있었는지 무감하고, 그들이 나와 무관한 듯 살고 있기 때문이에요. 이 작품에서 망령을 끌어올리는 태도가 중요했어요. 창작이란 건 계속 탑을 쌓고 뭔가를 길어 올리는 행위일 텐데, 나는 누구를 길어 올리며 무엇을 회복시킬까? 어떤 기이함과 기시감을 지적해 나갈까? 그것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어요. 
 

이제 한국 사진에서 주요하게 보고 싶은 건 여성 사진가들이 들고 있는 카메라예요. 길어 올리는 기능과 주도적으로 끌고 나가는 힘을 제가 남성 사진가들에게 배웠다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어요. 왜냐하면 제가 보는 사진들의 8-9할은 남성의 창작물이었으까요. 못내 부당하더라도 이 소환술에 대해서 익히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다음으로 고민하고 싶은 건 ‘그래서 나는 여성으로서 무엇을 길어 올리지?’ 입니다. 이제 바통을 넘겨볼게요.


 

김예솔비 황예지 작가님이 노순택 작가의 <얄읏한 공>과 홍진훤 작가의 <멜팅 아이스크림>을 소개해 주셨는데요. 대추리는 국가가 자행하는 폭력을 각인시키고, 주민들의 평화적 생존권이 무참히 무너지던 현장이었죠. 이것들은 식민주의, 아직 남아 있는 전쟁의 공포와 무관하지 않고, 제가 앞으로 소개하려는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영화와도 연관 있을 것 같아요.

인도네시아 공포 영화의 역사를 살펴보면, 정치적 권력관계가 드러나요. 인도네시아 영화의 기원은 네덜란드에 의해 시작돼요. 당시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는데, 네덜란드가 다른 나라 영화를 처음으로 인도네시아에 들여왔어요. 그리고 <백사 흑사 요괴(Doea Siloeman Oeler Poeti en Item, 1934)>라는 최초의 인도네시아 호러 영화는 화교 출신 테땡춘이라는 감독의 작품으로 뱀 요괴들이 인간이 되려고 하는 중국 민화 <우페쪼아>를 토대로 만들었다고 해요(순다 전설 ‘잃어버린 긴꼬리 검은 원숭이’를 각색한 1926년작 <루뚱 까사룽(Loetoeng Kasaroeng)>이라는 작품이 있지만 네덜란드인 G. 크루거(G. Kruger)와 L. 흐펠도프(L. Heuveldorp)가 제작해 엄밀히 인도네시아 첫 호러 영화라고 말하기 어렵다). 이렇듯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의 식민 통치를 오랫동안 받으면서 민족 정체성이 모호해졌고, 당시 대부분 영화인이 화교 출신이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루뚱 까사룽(1926)> 신문광고

 

<우페쪼아>연극 포스터(왼쪽)와 <흑사 백사 요괴> 영화 포스터(오른쪽)

 

사실상 인도네시아 영화가 꽃을 피웠던 시기는 1970년대라고 할 수 있어요. 70년대 이전에 정치적인 분쟁이 있었는데요. 공산당 쿠데타가 일어나고 수하르토(Suharto) 정권의 신질서 정부가 들어서게 돼요. 그 과정에서 인도네시아 대학살과 민간인 피해들이 있었죠. 당시에 수하르토 정권은 강압적으로 권력을 행사했어요. 매체 검열을 하거나, 정부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을 사라지게 했죠. 수하르토 정권이 들어서면서 공포 영화가 대학살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거나 그것에 대한 반동으로서 성행하게 됐어요. 그때 인도네시아 공포 영화가 전성기를 맞게 돼요. 태국 영화처럼 지역 전설들이 스크린에 옮겨져 오는 경우가 많았고, 귀신과 요괴를 소재로 하는 영화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여기서 제가 소개하려는 작품은 리아르 리젤디(Riar Rizaldi)의 <Ghost like us(2021)>라는 영화에요. 이 영화에서는 70년대에 탄생한 공포 영화의 역사를 조명하는데요. 70년대 공포 영화가 인도네시아 신질서 체제의 이데올로기를 담는 역할을 해왔고, 그 영화에서 유령, 괴물, 악마는 군부 권력을 행사하는 권위자 혹은 군인이 해결해야 할 무질서를 상징한다고 해요. 공포 영화에서 중앙집권적 권력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데, 특히 70-80년대 공포 영화에서는 캄퐁이라는 농촌 지역에서의 갈등이 자주 등장합니다. 도시에서 온 남자 주인공이 흑마법사와의 대결에서 이기고 모든 게 완벽하게 정상으로 돌아가는 서사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데요. 이런 내러티브를 통해 농촌 지역 주민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무능한 인물로 여겨지고, 수하르토 정부의 개발 중심적인 체제와 도시가 농촌을 탄압하는 구조를 볼 수 있습니다. 그 이후에 영화<젤랑쿵(Jelangkung, 2001)>을 시작으로 반복되는 내러티브를 탈피하고 열린 결말도 수용돼요. 하지만 농촌을 도시 사람들이 문제를 해결해 줘야 하는 수동적인 대상으로 묘사하고, 도시 사람들이 스릴을 소비하고 유령이 출몰하는 장소로 대상화하는 관행은 여전했어요. 

 

리아르 리젤디, <Ghost like us(2021)>

 

농촌에서 호러 영화의 가능성이 만들어진 것은 불법 VCD 시장 때문이었어요. 도시가 계속해서 농촌을 스펙터클이나 스릴의 대상으로 만들고, 농촌에 출연하는 유령을 도시 사람이 처치하는 내러티브의 공포 영화를 통해 농촌을 착취하는 사상을 전파했다면, 실제 농촌이라는 장소에서 주체적으로 만들어지는 대안적 호러로서의 가능성을 열어준 것이 불법 VCD 시장이었다는 거죠. 2003년부터 2005년까지 VCD로 만든 저예산 독립 영화와 다큐멘터리가 성행했어요.

작가는 그중에서도 <미스터리 본도워소(Mistery Bondowoso, 2005)>라는 영화에 주목해요. 이 영화에는 인도네시아 동부 자바 본도워소라는 시골에서 유령을 사냥하고 의식하는 모습을 기록했어요. 굉장히 간소한 캠코더로 촬영해서, 이게 픽션인 건지 진짜 누군가가 생생하게 현장을 기록한 건지 픽션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요. 그래서 사람들이 이 영화를 굉장히 생생한 공포로 느꼈다는 거죠. 극장에서 똑같이 재생산되는 도시의 호러와는 다른 대안적인 공포, 진짜 유령을 보는 경험이었던 거예요.

또한 이 작가는 ‘테크노 샤먼’에 주목해요. 이 영화가 보여주듯 디지털 비디오 카메라를 활용해서 유령 혹은 영적인 존재를 탐색하는 샤머니즘이 있는데요. 샤머니즘이 디지털 매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활용했다는 사실이 특이하죠. 누구나 들 수 있는 저화질 카메라는 민주적인 영화 제작의 방식이며, 도시에서 많은 자본을 들여서 만든 공포 영화보다 더 실제적이고 감각적인 공포를 생산합니다. 대상과 가까이에서, 거의 모든 것을 촬영할 수 있다는 디지털의 특징이 주술적인 체험, 일종의 샤머니즘처럼 연결됐다는 점이 흥미로운 것 같습니다('테크노 샤먼'에 대한 더욱 자세한 내용은 이한범 미술비평가의 글을 참고 바란다. 이한범, 샤먼적 역량, 혹은 픽션 엔지니어링 : 리아르 리잘디의 작업에 관한 노트).

이런 식으로 VCD, 불법 유통 시장망에서 탄생한 영화는 영화의 ‘장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드는 것 같아요. ‘시네마틱 엘스웨어(cinematic elsewhere)’는 우리가 비단 극장뿐만 아니라 가정 혹은 극장이 아닌 게릴라적인 장소에서 영화적인 체험을 할 수 있다는 개념인데요. 불법 유통망, VCD 카메라, 캠코더 카메라가 새로운 질감의 호러를 만들고 영화적인 다른 장소로 기능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미스터리 본도워소>를 찾아보려고 검색했더니 틱톡 영상이 나오더라고요. 간혹 틱톡에 본인이 직접 찍은 폐가 체험 영상들이 올라오는데, 그 또한 일종의 시네마틱 엘스웨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VCD라는 매체에서 지금 유행하는 틱톡까지, 영화적 경험이 극장이 아니라 다른 플랫폼으로 옮겨가면서 여러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점을 리아르 리잘디의 영화를 통해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이건 영화에 대한 공동의 기억을 만드는 자리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어떤 영화가 특정한 기간에 개봉하고 사라지는데, 개봉하지 않은 영화들, 영화제에 잠깐 소개되었다가 사라지는 영화들은 그 영화에 대한 공동 기억을 만들 수 없다는 점에서 이 영화가 과연 존재했는지 증명하기가 굉장히 어려운데요. 오히려 온라인 플랫폼이나 인터넷에 떠도는 각종 밈과 영상물들이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영화적인 공동 기억과 체험에 가깝지 않을까? 그렇다면 과연 영화를 만들고 개봉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아까 대추리 분쟁으로 돌아가자면, 평택 미군 기지가 대추리까지 확장되고,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다 농사만 짓던 사람들이라 그 땅에서 쫓겨나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한 거죠. 대추리 분쟁도 도시가 농촌에 행하는 탄압 구도로 볼 수 있어요. 인도네시아 공포 영화 혹은 대안적 테크노 샤머니즘을 통해 공포 영화가 보여주는 가능성도 도시가 착취하는 농촌이 아니라 농촌에서 만들어지는 대안 혹은 저항인 것 같습니다.


 

윤성희, <표지 없는 지도와 지워지는 사진들 (2024)> (출처: 보스토크 매거진)
윤성희, <표지 없는 지도와 지워지는 사진들 (2024)> (출처: 보스토크 매거진)

 

 

황예지 제가 말미에 잡고 가고 싶었던 것은 동시대 여성 사진가의 작업이었어요. 저는 항상 그런 것들이 보고 싶고 궁금해요. 그랬을 때 떠오르는 작가 두 명의 사진을 가져와 봤는데요.

첫 번째는 한국에서 사진 기자로 활동하시는 윤성희 작가의 <표지 없는 지도와 지워지는 사진들>이에요. 이런 막막한 사진들이 무엇을 얘기하고 있나? 처음에 가닿기는 힘든 것 같아요. 이미지만으로는 이 여백들을 채우기 힘들고, 인상만 가져올 수 있는 것 같거든요. 이 작가님은 산재 노동자가 죽은 자리, 그리고 그 이후의 풍경들을 면밀하게 담았어요. 그 이야기를 듣고 나면 사람이 없는 풍경, 땅이라는 게 굉장히 이상하다는 감각 자체가 망령이 돼서 독특한 사진 경험을 하게 해주거든요. 

특히 흰 천 사진이 저에게 많은 말을 해줬던 것 같아요. 이 작가님이 산재와 관련된 공간들을 다니면서 적은 수기가 있는데, 읽어봄 직해서 가져왔어요.

“이건 기억일까, 예감일까? 어제일까, 오늘일까? 이건 정말 우리의 현재와 분리할 수 있는 것일까? 죽음이 타인의 고통으로 무감한 숫자로 흔한 이미지로 아무것도 되지 못할 풍경이 되었다. 되었다 해도 끝내 아무도 웃지 못하면서 우리는 정말 안도할 수 있었던 건가? 살아남았나 다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함께 기억하는 일도 있는 일도 온전히 해보지 못한 우리의 자리는 무엇이 될까? 그것을 알 수 없어 남은 풍경을 보러 다녔다. 그런 건 물어보지 마세요, 라는 말. 어쩌면 말 너머의 세계. 그런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했다. 그건 내가 정확히 말하지 못할 모든 것들, 그래서 무서움, 아예 멀리 떨어지거나 차라리 완전히 가까워졌으면 싶어질 정도로 어쩔 수 없는 것들, 그러나 나와 무관해질 수도 떨쳐 낼 수도 없는 것들이기도 해서 한 번 더 볼 때야 비로소 모든 것을 시도해 볼 수 있다면 다시 볼 수밖에.”

구체적인 산재 현장에 대한 기술도 있었지만, 감각하는 상태에 대한 문장만 발췌해 왔어요. 말 너머의 세계, 남은 풍경들, 죽음이 남기고 간 것들, 그것들을 더듬거리는 행위가 무엇을 완성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이 더듬거리는 행위 자체가 필요하다. 

요즘 저는 그런 생각을 하거든요. 이제는 AI가 이미지를 만들 수 있고, 그 이미지들은 목적성이 뚜렷하고 ‘쓸모 있음’으로 향하는 것 같아요. AI는 계속해서 쓸모 있는 이미지들을 생성하기 위해서 훈련받겠죠. 그럴수록 저는 인간이 남은 풍경을 찍는 것, 서정과 감각을 향하는 것이 굉장히 귀중하다고 생각해요. 이 작품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많이 호명될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요즘 작품을 볼 때 효능감 없는 상태가 너무 필요하거든요. 막연함이 육감으로 느껴지는 작업이라 꼭 같이 보고 싶었어요. 

 

 Vân-Nhi Nguyễn, <As you grow older(2022-2024)> (출처: https://vannhinguyen.com)

 

베트남 여성 사진가 Vân-Nhi Nguyễn의 사진 시리즈<As you grow older(2022-2024)>를 가져와 봤어요. 지금 활동하고 있는 1999년생 작가예요. 윤성희 작가가 계속 ‘없음’을 향한다면, Vân-Nhi Nguyễn은 반대로 ‘있음’을 향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이 작가는 카메라를 빼앗고 있는 것 같아요. 제국주의, 식민 지배를 했던 사람들의 카메라 롤이나 카메라를 쥐는 톤이 분명하게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대형 카메라로 위대함을 웅대하게 찍는 방식. 근데 저는 이 베트남 작가가 대형 카메라를 탈취해 와서 자기 세대를 포트레이트로 찍는 것 자체에서 엄청난 전복과 쾌락을 느꼈어요. 이미지 환경은 남루해요. 근데 이 카메라는 절대 남루하게 찍기 어려운 카메라거든요. 꼿꼿하게 삼각대를 세우고 위대한 사람들을 찍었던 대형 카메라의 방식으로 찍었단 말이죠. 

이 어긋나는 직선과 곡선들이 전복적인 전선처럼 느껴졌어요. 이 사진을 보면 미국의 미시시피강을 따라 찍는 사진가 알렉 소스(Alec Soth)의 이미지도 생각나거든요. 그 사람이 조망하는 미국의 풍경 사진과 이 사진은 정말 차이가 크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형식은 같다는 게 묘한 전쟁처럼 보이기도 해요. 만약 카메라가 총이라면, 이건 다시 수탈하는 역사다. 그래서 과격하게 카메라를 뺏어온 느낌이 굉장히 좋았어요. 이 작가는 분명히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알고 있어요. 인터뷰에서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거든요.

“우리의 역사는 수천 년간의 식민지화로 인해 매번 깨끗이 지워졌습니다’ 라고 그녀는 최근 대화에서 나에게 말했다. 그것은 우리의 정체성을 박탈하여 지금도 젊은 베트남 사람들은 그들이 처음부터 누구인지 심지어 이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누구인지조차 알지 못합니다. 베트남 사람들의 역사를 실제로 보면 우리는 40년 전인 1975년 독립하기 전까지 우리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어떤 감각도 얻지 못했습니다. 그 감각은 여전히 일생 안에 있습니다.”

베트남 식민지화가 길어지면서 젊은 세대는 자기가 누구인지, 어떤 국가의 사람인지 엄청나게 뮤트된 상태인 거예요. 정체성 없음에 공허함을 느낀다고 해요. 그 ‘없음’ 자체를 향한 분노, 약간의 불을 가진 채 찍은 포트레이트라고 느껴졌거든요. 분노의 불이 이 사진 안에서 보였어요. 어떤 의지와 소명처럼. 

사진 역사의 시작부터 베트남의 젊은 여성 작가까지 쭉 끌고 와 봤는데요. 카메라는 무시무시한 존재이며, 그리하여 한국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여성 창작자들은 어떤 기이함과 기시감을 느끼는가? 어떤 팔레트를 만들고 어떤 투쟁을 해야 하는가? 같이 고민해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억지스럽게라도 그 팔레트에 고정되지 않으려고 이런 리서치 연습을 해나갔고요. 작업할 때는 의심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저는 의심을 잘 안 하고 잘 속는 사람이거든요. 그것을 역행하기 위한 노력과 공동의 감각이 필요해서 이렇게 ‘사진에 없었던 사람들’을 리서치해 봤습니다.


김예솔비 홍진훤 작가의 <멜팅 아이스크림>과도 연관 있는 영화 <질산염: 잃어버린 필리핀 무성영화 75편의 유령에게 (Nitrate: To the Ghosts of the 75 Lost Philippine Silent Films, 1912-1933)>는 필리핀의 사라진 무성 영화를 복원한 것을 파운드 푸티지로 만들었어요. 초기 필름은 니트레이트, 즉 질산염으로 만들어졌는데, 불에 약하고 부식도 잘 돼요. 이렇게 손상된 질산염 필름을 복원할 때 예상치 못한 이미지가 생기기도 하고요. 이미 사라지고 부식된 이미지를 복원한다는 개념에 따라오는 유령성이 있고, 또 그 이미지를 맞닥뜨렸을 때 생기는 유령성이 있는 것 같아요. 

사실 필리핀 영화는 국제 영화 시장에서 굉장히 소외되어 있는데요. 라브 디아스(Lavrente Diaz) 같은 유명한 감독들도 있긴 하지만, 필리핀 무성 영화의 역사는 거의 조명되지 않았어요. 이렇게 은폐된 역사를 어떻게 복원해서 보여줄 수 있을까요? 필름이 복원되는 물질적 절차, 그리고 수면 아래에 묻혀 있던 필리핀 무성 영화의 역사를 끄집어낸다는 두 가지 움직임이 겹치는 지점에서 이 영화는 단순히 필름을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새롭게 편집해서 다른 내러티브를 만들어내요. 복원되는 영화들이 거의 공포 영화나 판타지 소재의 영화들이에요. 선형적이거나 인과적으로 맞아떨어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굉장히 이상하고 불온하게 접속되고 불균질하게 연결되는 새로운 내러티브를 만들어 낸다는 말이죠. 또 다른 차원의 유령성을 만들어낸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카븐(Khavn), <질산염: 잃어버린 필리핀 무성영화 75편의 유령에게(2023)>

 

이런 방식으로 부식된 필름을 복원하고 다른 영화들과 엮어서 영화를 만드는 제작 방식을 ‘파운드 푸티지’라고 할 수 있어요. 파운드 푸티지는 어원 자체가 기존에 있는 뉴스릴이나 다른 영화들의 장면을 원본의 맥락에서 떼어내어 완전히 새로운 맥락으로 변화시키는 것에서 출발해요. 기존의 질서나 정보가 유통되는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서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제작 방식인 거죠. 그래서 파운드 푸티지가 가진 정치성이 필리핀의 무성 영화, 그러니까 사라진 역사 혹은 사라진 존재들을 복원하는 데에 동원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어요. 

 

Clip #12251: St. Francis of Assisi (di. Enrico Guazzoni, Cines, 1911) (출처: Progetto Turconi)

 

Clip #18088: Barbe bleu (Pathé, 1907) (출처: Progetto Turconi)

 

Clip #21894: La Mort de Mozart (di. Louis Feuillade, Gaumont, 1909) (출처: Progetto Turconi)

 

“History becoming liquid.”

마지막으로 질산염 필름에 대해서 간단히 이야기하면서 끝내려고 해요. 제가 구글링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웹페이지인데, Davide Turconi라는 사람이 복원된 온갖 니트레이트 필름을 아카이빙 해놨어요. 그중에서는 굉장히 해괴하게 변형된 이미지들도 남아 있어요. 완전히 녹아내린 멜팅 아이스크림처럼, 역사라는 것이 녹아내린 이미지로 보여요. 실제로 그것이 질산염 필름의 운명이기도 하고, 역사는 기존의 권위를 무너뜨리면서 계속해서 변하잖아요. 역사가 현재로 끌려올 때 계속해서 이런 변형의 과정을 거치고 있고, 그것이 우리가 지금 마주하고 있는 권력의 견고함과 투쟁하고 의심하는 방식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 같아요. 

빌 모리슨(Bill Morrison)이 만든 <디케이시아(Decasia, 2002)>라는 영화가 있는데요. 이 영화도 완전히 부식된 질산염 필름을 파운드 푸티지와 결합해서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 내요. 어떤 이미지가 부식되는 것, 그리고 필름이라는 물질이 영원하지 않고 계속 변형이 일어나고, 그렇게 변형이 일어난 이미지를 볼 때의 또 다른 서사가 만들어지고… 그렇게 죽음과 맞닿는 감각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는 작품입니다. 이제 마무리를 예지 작가님에게 넘기도록 하겠습니다.

 

빌 모리슨, <디케이시아(Decasia, 2002)>

 

 

황예지 계속 거슬러 오르면서 투쟁하고 전복하는 리서치였다고 생각하는데요. 원소 자체는 간결하거든요. 물, 얼음, 불, 땅처럼 가장 기본적인 어휘들로 가는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이 계속 악수하고 포옹하고 같이 가고 있다는 느낌 자체가 저는 반갑고 좋아요. 사실 이 리서치 발표에 어떤 악수가 있을지 전혀 예상치 못한 채 서로 긁어온 거였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접합부가 있는 걸 보니 어쨌든 싸움은 항상 그렇구나 생각이 들고요. 이러한 시각 권력 안에서 어떤 어깨동무를 하며 싸울 수 있을지 잘 알 수 있는 시간이라 즐거웠습니다.


김예솔비 특정한 관점으로 정렬하기 전에 무작위로 나열된 자료들을 보면, 그것에서 촉발되는 새로운 게 있을 거라는 기대로 이 자리를 기획했었는데요. 예지 작가님의 이야기를 연장해서 제가 새롭게 이미지를 해석하기도 하고, 주고받는 영향이 좋았습니다.

 

김예솔비
영화를 중심으로 시각예술 전반에 대한 글을 쓴다. 이따금 영화 비슷한 것을 만든다.

황예지

199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수집과 기록을 좋아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랐고 그들의 습관 덕분에 자연스럽게 사진을 시작했다. 사진과 에세이, 인터뷰 등 다양한 형식을 다루며 개인적인 서사를 수집하고 있다. 개인의 감정과 관계, 신체를 통과해 사회를 바라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