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서치는 흔히 작품을 제작하기 위한 준비 단계로 여겨지며, 그것을 ‘잘’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은 소모적인 일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리서치는 특정한 정보에 접근하고, 아카이브를 재검토하고, 주류적인 흐름으로부터 빗겨나가는 탐색이라는 실천에서 정치적이고 미학적인 효과를 자아내는 활동이다. 더 나아가서는 어떤 것의 심층을 향해 파고들기 위해 일정한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는 모순을 마주하는 일이기도 하다.
사진과 영화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황예지와 김예솔비는 남성 지배적 흐름, 제국주의적인 흐름 안에서의 영화와 사진을 비판하고 아시아, 동남아시아, 흑인을 중심으로 흐름을 거슬러 오르는 리서치를 연습한다. 리서치는 각자의 책상에서 이뤄지는 일일 뿐 아니라 두 사람 이상이 나누는 대화가 될 수도 있다. 그 과정을 공유하고 시험하는 자리를 마련한다. 아래는 2024년 11월 30일 소리그림에서 열린 리서치 토크를 정리한 내용이다.

김예솔비 안녕하세요. 저는 영화를 중심으로 시각 예술 전반에 대한 글을 쓰고 가끔 영화를 만들기도 하는 김예솔비라고 합니다. 황예지 작가님과 <아래로 거슬러 오르는 리서치 연습>이라는 제목으로, 리서치 과정을 공유하는 것도 대화가 될 수 있을지 실험하는 장을 만들었습니다.
황예지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에서 사진을 찍고 글을 쓰고 있는 황예지라고 합니다.
김예솔비 먼저 저희가 어떤 이유로 이 리서치 연습을 기획했는지 이야기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황예지 저는 서울에서 여성 창작자로 살아가는 것에 곤란함을 굉장히 많이 느끼는 편이거든요. 무의식 안에서 느껴지는 어떤 불균형이 있는 것 같아요. 그 흐름을 사진 매체에서 직시해 보자 생각했고, 그것을 공유할 수 있는 파트너로 예솔비가 생각나서 같이 하자 제안했어요. 제국주의적인 흐름, 그리고 남성 역사의 흐름 안에서의 영화와 사진은 무엇인지 공부해 보고 싶어서 이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김예솔비 작업 결과물이 아니라, 준비 과정을 공유하고 발표하는 게 민망한 일이잖아요. 부끄럽기도 하지만, 완성된 형태의 결과물을 내놓아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고 싶었어요. 미완성이고 부족하더라도 서로 이야기 나누면서 새롭게 흐름, 몽타주를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처음에 떠올린 건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라는 학자의 <므네모시네(Mnemosyne, 1929)> 프로젝트였어요. 르네상스 미술 작품들로 서구 유럽 문화를 심층적으로 탐색한 작업인데요. 서로 다른 역사와 맥락을 가진 이미지들이 인접했을 때 예상치 못한 의미가 발생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프로젝트예요. 저희가 기대하는 것도 이것과 비슷해요. 바르부르크가 도서관을 만들 때 ‘좋은 이웃의 법칙’을 이야기했거든요. 자기가 찾는 책보다, 그 책의 옆에 있는 책이 더 많은 것을 알려준다는 법칙이에요. 우발적이고 즉흥적인 만남으로부터 새롭게 배우기 위해서는 일단 도서관에 가야 한다는 거죠.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 자리를 기획했어요. 혹은 두 사람이 하는 테트리스처럼 난잡한 이미지와 정보들이 나열될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하지만, 이 또한 게임의 규칙을 부수는 것이 아닐까요? 그 나름의 카타르시스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먼저 캐주얼하고 날 것의 이야기로 포문을 열어 보려 해요. 얼마 전에 영화<서브스턴스(2024)>를 봤어요. 저는 이 영화가 바디 호러라는 정보만 가지고 극장에 들어갔는데, 제가 정말 못 보는 형태의 영화인 거예요. 굉장히 보기 힘들었고 진짜 신체가 떨리고 추워지는 감각을 느꼈어요. 그래서 막 눈을 가리면서 봤는데, 다른 사람들은 멀쩡히 보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볼 수 있는’ 공포 영화와 ‘볼 수 없는’ 공포 영화의 차이가 뭘까 생각해 봤어요.
‘점프 스케어(jump scare)’는 공포 영화의 관습인데요.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되지만 계속해서 지연되다가 갑자기 확 나타났을 때의 효과예요. 생각해 보니 제가 견디지 못하는 것 중 하나가 ‘예측 가능성’이거든요. 그 예측 가능성이 저를 굉장히 지루하고 피폐하게 해요. 점프 스케어는 뭔가 나타날 것 같다는 예측 가능성을 굉장히 예측 불가능한 타이밍에 던져주는 거잖아요. 예측 가능성과 예측 불가능성을 불쾌하게 교란하는 것. 점프 스케어의 불쾌함이 거기서 오는 것 같아요.

반대로 <서스페리아(2018)>와 서스페리아 원작은 괜찮았던 것 같아요.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도 볼 수 있거든요. 이런 영화들에 점프 스케어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이 영화들은 기이하고 으스스하다는 감각을 주는 것 같아요.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2019)>이란 동명의 제목으로 마크 피셔(Mark Fisher)가 쓴 유명한 책이 있죠. ‘기이한 것’은 설명할 수 없는 것과의 만남에서 오는 불안감, 그리고 ‘으스스한 것’은 반대로 익숙했던 것이 낯설게 느껴지고 거기서 기대했던 것이 배반되면서 오는 불편함과 모호함, 이런 감각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모두 외부 세계와의 접촉 혹은 낯선 것을 포용할 때 오는 감각 혹은 그 감각의 적응 단계에서 오는 체험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기이하고 으스스한 것은 그나마 견딜 수 있는 이유이지 않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이제 예지 작가님에게 넘기겠습니다.


황예지 저희가 이렇게 왔다 갔다 이야기할 거예요. 그 안에서 무엇이 생기는지 발견하고 싶어서요. 저는 사진을 공부하면서 오히려 사진 바깥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기 시작했어요. 그 이유로는 제가 예고 사진과, 예대 사진과를 나왔는데요. 그 교과안에서 ‘사진의 역사’라는 굉장히 명징한 과목이 있었고, 수업에서 보먼트 뉴홀(Beaumont Newhall)의 <사진의 역사(2003)>라는 책을 교과서처럼 사용했거든요. 이 책은 나온 순간부터 세계 사진사를 대변하는 책이 되었어요. 처음에 읽었을 때는 사진의 발명부터 현대 사진까지 잘 정리되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최근 읽어보니, 이 책에 수백 명에 달하는 사진가들이 있는데 참 놀라울 정도로 백인만 있더라고요. 흑인 사진가조차 전혀 노출되지 않고, 동양의 사진권이 어떻게 발달됐는지도 없죠. 화이트 워시가 심한 책이라는 걸 이제야 느끼고 있거든요. 사진 매체가 굉장히 권력 중심적으로 서술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한 사람에 의한 역사가 얼마나 무자비한지 알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이 책을 반대 읽기 해보고 있어요. 동양인 사진가, 흑인 사진가를 발견하는 방법은 무얼까? 여기서 빠뜨린 내용이나 사람은 누굴까? 이 의구심에서 제 리서치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책에서는 흑인이 딱 한 번 나와요. 그 또한 백인 남성 사진가에 의한 움직임이긴 하지만요. 에드워드 머어브릿지의 사진인데, 저 기수가 흑인이에요. 이 책에서 곧바로 찾을 수 있는 유색 인종은 이 흑인 기수뿐이라는 사실이 관찰할 만한 지점인 것 같아요. 그 안을 면면히 파헤치면 그때 사회 분위기가 노출되거든요. 당시 흑인이 백인과 어울릴 수 있었던 스포츠는 ‘복싱’과 ‘승마’, 단 두 가지예요. 백인이 생각했을 때 ‘흑인은 동물적이다’라는 인식이 남아 있는 분야에서만 흑인이 백인 사회에 들어오는 것이 용인되었던 것 같거든요. 그래서 이 사진은 영화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사진인 동시에, 당시 유색 인종에 대한 인식을 대변하는 사진이기도 해요. 그래서 <놉(2022)>이라는 영화도 여기서, 이 사진으로 시작하죠.
이제는 사진사에서 유색 인종의 답변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사진사에 노출되지 않았지만, 흑인 사회에서도 분명하게 사진의 움직임이 있었거든요. 오히려 그들은 사진으로 배제되는 경험을 알기 때문에, 민족 저항의 도구로 사진을 많이 사용했어요. 1840년대에 사진이 개발되었을때, 흑인을 조롱하는 캐리커처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그들의 외모를 놀림거리 삼아 과장된 이미지들을 만들었는데, 그 이미지에 대한 응답으로써 그들은 노멀한 초상 사진을 채택했어요. 내가 여기 ‘살아 있음’을 증명할 수 있는 초상 사진들. 그래서 사진기 앞에서 포즈를 취한다, 그 단순한 행위 자체가 이들한테는 투쟁의 도구가 되곤 했어요.
제가 가장 인상 깊었던 사진이 하비 C. 잭슨의 사진인데요. 항쟁으로서의 이미지들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백인 사회에 노출되는 사진들은 거의 전쟁 사진이었다고 볼 수 있어요. 초기 제국주의 국가에서는 승패의 관점으로 이미지들이 계속 생성되고, 전쟁 사진에 엄청난 집착을 했어요. 프랑스도 그렇고, 독일도 그렇고요. 전쟁 이미지를 확보하는 것이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것처럼 집착하고 있을 때, 흑인 사회에서는 이런 이미지들이 만들어지고 있었다는 점이 지켜볼 만하죠.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언제 사진이 발행되기 시작했을까요? 서구에서는 1840년대에 사진이 시작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후 20년 동안 묵묵부답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최초로 조선이 사진에 접촉한 이미지는 이항억과 연행사절단의 사진이라고 이야기해요. 여태까지의 자료 중 가장 오래된 사진이에요. 근데 이 또한 러시아 공사관에서 러시아 사진가에게 찍힌 이미지거든요.
처음으로 사진에 찍힌 사람인 ‘이항억’의 일기를 찾아보았는데요. 일기가 너무 황당하고 귀여웠어요. ‘유리면이 어떻고 저떻고 이 사람이 내 앞에서 이렇게 하더라. 근데 나의 전면이 파리의 면에 옮겨져 있었다. 칠분 정도 옮겨진 것이 아니라 십분 다 옮겨 놓았다’ 이런 식으로 서술이 되고, 저는 마지막에 이 문장이 너무 재밌었어요. ‘이게 무슨 술법인고. 입으로 중얼거리는 것으로 봐서는 마치 환신지법 같더라’. 사진이 요술을 부린 것처럼 보였나 봐요. 처음에 우리나라가 사진을 접촉한 경위조차도 강대국에 의한 움직임이었지만, 사진의 신비감 자체가 잘 서술된 일기 같아서 발췌해 보았습니다.
저는 이 자료를 박주석의 <한국 사진사(2021)>라는 책에서 발췌했거든요. 여기에 너무 정확하게 한국의 사진에 대해 적혀 있다고 생각했어요.
“조선 말 한국의 개방을 촉진시켰던 일련의 사건들, 병인양요, 신미양요, 운양호 사건 등은 한국과 한국인들이 사진을 사진에 찍히는 계기를 만들었다. 한국의 경우 사진과의 접촉은 나라의 운명과 궤를 같이했으며 사진에 대해서도 능동적인 접근이 아니라 수동적인 기록에 단순한 피사체로 전락해 버린 역사를 갖고 있다.”
카메라를 도구로 삼는 플레이어가 됐다기보다는, 피사체로서 먼저 담기기 시작한 것. 저는 사진이 굉장히 권력을 가진 도구라고 생각하는데, 그 권력에 의해 피사체로 계속 담기게 된 거죠.


그에 대한 예시가 이 사진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자료가 된다는 것의 무시무시함이랄까요. 이 사진은 명성황후라고 칭하는 경우도 있고, 명성황후가 아니라 조선인 궁녀라는 이야기도 있는데요. 자료의 불분명함에서 인물이 흐려지는 경험을 하게 되죠. <한국 사진사>의 저자는 이렇게 말해요. ‘자료’이기 때문에 오해와 오독이 생긴다. 그리고 심지어 이 사진은 우리나라가 소장하고 있지도 않아요. 우리나라의 옛 사진들이 한국에 소장된 경우가 거의 없어요. 일본, 프랑스, 독일처럼 사진의 역사를 만들어낸 국가에서 다 밀수해 갔거든요. 그 움직임 자체에서 굉장히 공포감을 느꼈어요.
이 상황을 조금씩 뒤집기 시작했던 건 조선에 사진관이 생기면서부터였어요. 사진의 민주화, 그러니까 일반인들의 초상을 담기 시작했거든요. 확실히 자료가 될 때와 초상이 될 때 인물의 표정이 많이 차이가 있죠. 이 사진들을 통해 사진의 위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이렇게 우리나라도 사진을 ‘찍히기’가 아니라 ‘찍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는 사진들이 이때부터 터져 나왔어요. 그 축에는 ‘이홍경’이라는 여성 사진사가 있어요. 여성 사진사가 남성이 운영하는 사진관을 비판하면서, 어떤 움직임을 만드는 행보를 보였거든요. 여기서 또 한 번 사진이 달라지는 모습을 봤어요.
명성황후에서 이홍경이 찍은 초상까지, 제가 침입할 수 있는 사진들이 나온 시점을 발견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지금까지 쭉 나열한 경로는 세계 사진사의 빈틈입니다. 그들이 절대 담아내지 않을 한국 사진의 비애랄까요? 그 비애와 자격지심이 현재에도 많이 묻어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그 보폭을 만들면서 사진을 매체로 다루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싶어서, 이렇게 거슬러 오르는 행위를 해봤습니다.
김예솔비 예지 작가님이 보여준 것에서 잠깐 거슬러 오르자면은… 사진이 발명된 시기에 나온 광학 장치 중에 ‘입체경(stereoscope)’이 있었거든요. 입체경은 다른 화각의 두 장의 사진을 나란히 붙여 안경으로 보면 입체감을 느낄 수 있게 한 장치인데요. 보통 입체경에 들어가는 사진들이 전쟁 사진 아니면 미지의 땅에서 만난 낯선 원주민, 이런 식으로 스펙터클을 체험하게 하는 이미지였어요. (입체사진(stereography)는 1850년대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관심 덕분에 첫 번째 황금기를 맞았다가 1860년 후반 생산 비용의 증가로 인해 쇠퇴한 뒤, 20세기 초 underwood&underwood라는 제조사의 유통 덕분에 제2의 황금기를 맞았다. 제1차 세계대전에 촬영된 약 1만 장 이상이 상업적으로 복제 및 판매되었지만, 이후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대부분 소실되었다).
공포 영화도 비슷해요. 공포 영화는 사회의 권력 구조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르인 것 같아요. 어떤 대상이 소수자인지, 어떤 집단이 혐오의 대상인지 잘 보여주죠. 아까 언급된 조던 필(Jordan Peele)의 <놉>처럼, 공포 영화는 혐오의 방향을 노골적으로 보여주기도 하고, 또 소수자들이 혐오를 전복해서 자신의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는 장르이기도 해요. 또 제가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타자 혹은 낯선 이와의 마주침 속에서 왜 이게 낯선가? 왜 이게 불쾌한가? 그 감각을 성찰하게끔 하죠. 우리 사회가 소수자들을 어떻게 혐오하고 탄압하고 있는지를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공포 영화가 가진 정치적 역량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다시 제 얘기로 돌아보자면, 공포 영화를 볼 때의 즉각적인 신체 반응에서 ‘얼음’을 떠올리게 됐어요. 공포 영화는 사람을 위기에 몰아놓고, 그 위기감 때문에 우리의 몸이 서늘해지잖아요. 공포 영화가 여름에 인기를 끄는 이유이기도 하죠. 그래서 ‘공포 영화’하면 열대 지방이 생각나고, 열대 지방에서 공포 영화가 성행하는 궤적이 생각났어요. 열대 지방이나 동남아시아를 배경으로 만든 영화에 얼음이 나오는 장면이 있을까? 이런 생각으로 이어졌는데 확 연결되진 않더라고요. 그러다가 영화에서 얼음이 나오는 장면들을 모아서 서서히 물로 흘러가는 과정인 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를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이 영화는 피터 허튼(Peter Hutton)의 <At sea(2007)>인데요. 한국에서 항만노동자들이 선박을 만드는 과정과 이 선박이 말레이시아의 선박 해체장에서 해체되는 과정을 보여줘요. 이렇게 어떤 물질이 만들어지고 와해되는 과정이 그 산업의 구조를 보여주는 것 같아요. 선박이 만들어진 곳은 한국이고 해체된 곳은 동남아시아 혹은 제3세계잖아요. 선박의 탄생과 죽음을 통해 산업 구조 속에 있는지 알 수 있죠.
"콜드체인(Cold Chain)은 냉장과 냉동처리가 필요한 물품의 생산, 배송, 저장 및 판매에 이르는 일련의 상호 관련된 과학, 기술, 프로세스를 묘사하는 전문용어이다. 쿨 체인(Cool Chain)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간단히 정의하면 ‘온도를 제어하는 공급 사슬’이다. 관점 및 목적에 따라 콜드체인의 정의가 조금씩 다르지만, 기준은 동일하게 ‘온도를 제어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콜드체인은 대량의 식품을 먼 거리까지 안전하게 운송할 수 있는 온도 제어 물류에 대한 요구가 증가함에 따라 진화해왔다. 현대에 들어서 콜드체인은 다양한 기후 조건을 통해 더 민감하거나 중요한 화물을 먼 거리까지 운송하기 위한 공급망 솔루션의 필수 요소가 되고 있다."
(출처 : 한국공제보험신문)

그런 식으로 생각하다가 ‘콜드체인(cold chain)’을 찾아보게 됐어요. 콜드체인은 냉동 처리가 필요한 물품을 유통하는 체계를 뜻해요. ‘체인’이라는 단어를 쓰는 게 재밌더라고요. 얼음이 녹아서 물이 되고 그게 증발해서 비로 내리고 다시 바다가 되는 자연의 순환과는 정반대로 얼음을 유지하기 위한 인위적인 산업의 체계를 겹쳐놓으려는 점이 재밌었어요. 이런저런 것을 찾아보다가, 한국에서 콜드체인 산업이 진출할 때 유망한 나라가 인도네시아라는 점을 알게 됐는데요. 왜냐하면 인도네시아는 음식 폐기량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나라이기 때문이에요. 더운 나라니까 온도가 맞지 않거나 상해서 폐기되는 음식이 많은 거죠. 그래서 동남아시아에서 콜드체인이 유망 사업이라고 전망하는 국내 기사들이 많아요.

얼음에서 물로 흘러가는 이미지를 계속 생각하다 보니까, 프란시스 알리스(Francis Alÿs)의 작업<실천의 모순 1(1997)>도 떠올랐어요. 프란시스 알리스가 멕시코 시티에서 커다란 얼음을 밀고 다니는 작업인데요. 9시간 동안 밀고 다녔고, 얼음이 점점 작아지다가 결국 사라져 버려요. 노동이 비가시화되는 현상과 계속해서 비가시화될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업이기도 해요. 그래서 얼음에서 물로 흘러가는 것이 마냥 자연의 순환일 뿐만 아니라, 노동이나 산업 구조와도 연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그 과정에서 어떤 노동은 잘 보이지 않고, 거대한 산업 구조 안에서 소외되는 것이 생길 수 있겠죠.


얼음에 대해 찾다 보니까 ‘아이스(I.C.E)’라는 극장도 있더라고요. ‘이머시브 시네마 익스피어리언스(Immersive Cinema Experience)’의 약자인데요. 영화의 미래를 생각해 보면 물이 넘쳐흐르는 이미지로 상상되는 게 재미있었어요. 실제로 싱가포르에 있는 어떤 극장에서는 외식과 영화를 접목했다고 하더라고요. 웨스 앤더슨의 영화를 보면서 음식을 먹는대요. 영화가 계속 감각을 확장해서 궁극의 체험을 하는 전망을 제시하는 건데, 디스토피아적인 이미지로도 보이는 점이 의미심장해서 가져왔어요.
황예지 제가 다시 바통을 가져올게요. ‘인종성’, 인종의 어떤 성질을 뜻하는 것에 이름을 붙이는 행태에 대해서 이해하기 시작한 건 캐시 박 홍의 <마이너 필링스(2021)>을 읽으면서였어요. 이 책은 미국에서 미국계 한국인으로 자라면서 느끼는 감각에 대해서 이론에서부터 자기의 삶까지 담은 에세이이자 이론 서적이에요. 작가의 삶에 대해 굉장히 투명한 순간과 불투명한 순간, 모든 게 다 담겨 있어요. 사진에서도 분명히 인종성에 대해서 감각할 기회가 많았지만, 이미 불균형으로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사진으로 예시로 들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가장 역사가 오래됐으며 인종에 관한 투쟁이 길었던 곳이 문학, 글이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글을 먼저 잘 읽어보자, 인종에 대한 여러 가지 책들을 읽었는데요. 이 책에 제가 인종성에 대해서 깨어날 수 있는 기회를 준 문장이 있었어요.
“나는 어린 시절을 뒤돌아보지 않고 항상 곁눈질했다. (...) 그 부러움은 백인 친구의 집에서 저녁을 먹을 때, 온갖 광고와 TV 방송에서 아이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고 어떤 가정에서 자라야 하는지 선명하게 보여줄 때 내 속을 갉아먹었다. 퀴어 이론가 캐서린 본드 스톡턴은 퀴어 아동이 어떻게 옆으로(sideways) 자라는지 적으면서, 퀴어의 삶이 흔히 결혼과 출산이라는 직선적인 시간의 흐름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스톡턴은 유색 인종 아동 역시 옆으로 자라는데 그들의 어린 시절도 퀴어 아동과 마찬가지로 소중한 백인 아동이라는 모델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여기서 ‘사이드 웨이(sideways)’가 저에게 중요했어요. 저는 10살 무렵에 미국에서 잠시 살았는데, 그때 내가 ‘옆에 있다’는 감각이 무엇인지 제대로 느꼈거든요. 수영장에 갈 때나, 마트에 갈 때 너무나 분명하게 경험했던 것 같아요. 저는 유럽을 여행하거나 한국에 있는 미술관에 가도 ‘옆에 있다’고 느껴요. 그들이 셀렉한 컬렉션 안에서, 저는 분명히 여성이라는 이유로, 퀴어라는 이유로, 청년 세대라는 이유로 여전히 ‘옆에 있다’고 느끼거든요. 그래서 ‘옆에 있음’이란 무엇일까? 옆에 있으면서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이 고민을 계속해 봤어요.
저는 한국인들이 무해하게 사랑하는 영화들이 무서워요. 어느 카페에 걸려 있는 영화 포스터도 세척이 정말 많이 됐구나 생각하거든요. 시각은 권력 도구라고 생각하는데요. 내가 과연 이 안에서 청렴할 수 있을까? 내가 본 것들을 의심하지 않으면서 자라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깊게 하게 됐어요. 여기 이 문장들이 적확했던 것 같아요.
“웨스 앤더슨은 한때 신순수파 영화인으로 분류됐었다. 최근에 그의 영화 <문라이즈 킹덤>을 다시 보았는데 어느 블로거의 말처럼 그야말로 달콤하고 가벼웠다. 빛바랜 엽서 같은 색을 입혀놓은 영화는 하나의 이야기면서 (...) 앤더슨이 갖춘 꼼꼼한 수공예적 작가 정신은 감탄할 만하나, 앤더슨은 수집가이며, 수집가의 취향이란 무엇을 빼놓느냐에서 잘 드러난다. 때때로 백인이 아닌 등장인물이 앤더슨의 영화에 출연하지만, 그들은 대부분 요란한 제복을 걸치고 조수의 역할을 하는 조용한 인도인 배우들이다. <문라이즈 킹덤>의 안전하게 차단된 팔레트에는 ‘타자’의 자취가 없다.”
‘팔레트’라는 표현이 굉장히 정확한 것 같거든요. 그가 얼마나 색깔을 편협하게 선택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 영화의 색이 정말 아름답다고 찬미할 수 있는 건지 의문이 들더라고요. 영화의 색깔 측면에서 매서운 지적인 것 같아요.

그렇다면 여태까지 차단된 팔레트와 반대로 팔레트를 만든다는 건 무엇일까? 내 인종과 내 피부색에서 출발한다는 건 무엇일까? 고민했을 때 저에게 정말 소중했던 책이 있어요.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2022)>은 90년대생 세네갈 작가 모하메드 음부가르 사르(Mohamed Mbougar Sarr)의 책이에요. 한국도 당연히 식민의 경험이 있지만, 세네갈은 또 다른 식민의 경험을 한 나라라고 생각하거든요. 작가는 얌보 우울로구엠(Yambo Ouologuem)의 <폭력의 의무(bound to violence, 1968)>를 오마주하며 이 책을 읽은 자신의 경험을 말해요. <폭력의 의무>는 프랑스 문단에서 소리 소문 없이 백인 사회에 의해 추앙받다가 나락으로 떨어진 작품이고, 흑인들이 얼마나 폭력적인 상황에 노출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적혀 있어요. 근데 표절 의혹이 생겼고 이 작가는 결국 숨는 것을 택해요.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의 작가는 이 책의 경험을 변용해서 발자취를 좇거든요. 그 책을 다시 소환하면서 따라가고, 내 인종으로서 하지 말아야 하는 실수가 무언지, 그리고 매체가 식민지화됐다는 것은 무엇인지 깊이 사유해요. 책에서 여러 인물이 식민에 대해 감각하거든요. 식민지화의 가장 무서운 점은 누군가는 그 세계를 따라가고 싶다는 것, 완전히 동일화되는 경험, 그리고 오히려 저항하면서 본인이 망가지는 경험이 있겠죠. 등장인물마다 식민지화를 받아들이는 농도가 달라서 생각해 볼만한 책이었어요.
그래서 이 책은 우리가 현재 읽어야 하고, 새로운 팔레트로 기능하기에 꼭 같이 얘기해 보고 싶었어요. 실제로 세네갈은 ‘흑인성’이라는 단어를 내세우면서 국가 운동을 했었어요. 이들이 식민지에 노출되었던 경험을 회복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내세운 게 ‘흑인성’이었거든요. 그들이 주장하는 흑인성은 기존의 원주민, 그리고 의식과 영혼 그 자체였다고 생각하는데요. 그것을 표현한다는 게 무엇인지 알아보고 싶었어요.
첫 번째로 많이 발견했던 건 ‘땅’이라는 단어였어요. 세네갈 문학에서는 ‘대지’나 ‘땅’이라는 단어가 거듭해서 등장해요. 땅을 빼앗기고 또 땅의 권리를 찾는 사람들의 언어 같아요. 그 부분을 조금 읽어보고 싶어요.
"내 구덩이의 바닥에선 괜찮아, 거기선 땅의 질문이 내 문제를 해결해 주거든, 땅을 움직이게 할 기회지, 그 얘기는 땅을 움직이게 해, 땅한테 왜 중요한 문제인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어쨌든, 땅은 그 일에 관심이 많아."
이런 식으로 거듭 땅에 좌표를 심는 문장들이 많고, 그게 저에게도 울림이 있었어요.
“난 땅의 질문에 모르겠어요, 라고 대답해, 그러면 한 번도 빠뜨리지 않고 땅이 미세하게 흔들리기 시작하지, 내가 땅을 잘 안다는 뜻이야, 땅이 분노할 줄, 흔들릴 줄 알고 있으니까, 난 날 둘러싼 땅이 흔들리는 게 좋아, 땅이 흔들릴 때 기분이 좋아.”
이 소설에서 추녀이자 미치광이이자 땅을 가장 오래 지킨 여성의 언어거든요. 가장 연약하고 미치광이 캐릭터로 등장해요. 이 여자가 땅에 대해서, 묘지에 대해서 거듭 얘기하는데요. 이 사람이 땅을 통해서 제일 중요한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여기에서 제가 소중했던 발견은 죽은 자들이 묻힌 땅이었어요.
창작은 죽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무언가에 탑을 쌓는 일 같아요. 지금 레이어에 쌓인 모든 이미지, 제가 찾아온 이미지들은 거의 죽은 사람들이에요. 이렇게 죽은 자들에게 많이 노출되는 삶을 살고 있는데, 어떤 탑을 쌓아야 하지? 생각했을 때 ‘땅’과 ‘죽은 자’와 ‘묘지’가 저한테 중요했어요.
죽은 자에 대해서 얘기하는 건 예언의 성질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 거듭 얘기한다는 것, 이태원 참사에 대해서 거듭 얘기한다는 것 자체가 예언의 속성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렇게 작업을 한다는 게 무엇인지 같이 고민해 보고 싶었어요. 계속해서 제가 얘기할 것들은 그것들이 이행된 상태의 작업이에요. 그 경로를 탐색하고, ‘죽은 자’와 ‘땅’에 대해서 고민하는 동시대 사진 작업을 이야기하고 싶었고, 우선은 그 도구로서 문학이 저에게 거점 공간이 되어 주고 있었어요.
김예솔비 ‘얼음’과 연결지어서, 초기 다큐멘터리 영화의 역사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북극의 나누크(1922)>라는 영화도 생각났어요. 이 영화는 아주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로버트 플래허티(Robert Joseph Flaherty)가 북극에 가서 ‘나누크’라는 에스키모인과 그의 가족이 생활하는 모습을 촬영한 건데요. 최초의 논픽션(non fiction) 영화이자 다큐멘터리의 기원으로 자주 회자되고 있습니다(물론 <북극의 나누크>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다큐멘터리라는 개념이 발생하기 전에 선행한 영화이며 다큐멘터리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언급한 것은 존 그리어슨이다). 하지만 잘 알려져 있듯 사실 이 영화는 에스키모인들을 섭외해서 연출하는 방식으로 촬영되었어요. 예를 들면 고래를 사냥하는 장면을 찍을 때도 극 영화 연출하듯이 여러 번의 테이크를 가는 식으로 연출자가 많이 개입했어요. 최초의 다큐멘터리라고 알려진 영화가 사실은 굉장히 픽션적인 방식으로 제작됐다는 점이 아이러니한데요.


이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지게 된 계기가 있어요. 플래허티는 <북극의 나누크>를 제작하기 전 1914년에서 1915년까지 북극 원주민들이 사는 곳으로 탐험을 떠납니다. 하지만 플래허티의 담뱃불로 인해 북극에서 촬영된 약 30,000피트의 질산염 필름이 소실되었어요. 다시 북극에 가서 단순히 기록 영화가 아니라 새로운 걸 만들어 봐야겠다, 해서 만든 영화가 <북극의 나누크>라는 일화가 전해지거든요. 이렇게 영화 초기의 역사에 ‘불’과 ‘얼음’이라는 서로 다른 파괴력이 있었다는 점이 재미있었어요.
이렇듯 얼음에서 물로 흘러가는 자연적 과정이 있고, 얼음이 녹지 않게끔 유통하는 산업 구조가 있었죠. 자연을 거스르는 경제 또는 산업 구조에서 제3세계 국가들이 시장가치로 대상화된다든지, <북극의 나누크>처럼 얼음의 이미지가 서구인들이 스펙터클처럼 소비할 수 있는 탐닉의 대상처럼 여겨진다든지, ‘얼음’과 ‘소수자’의 역사를 겹쳐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또한, 영화는 얼음과 불의 긴장에서 태어났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플래허티가 필름이 불에 타버려서 북극에 가서 새로운 영화를 찍은 게 다큐멘터리의 원형처럼 되었는데요. 어떻게 보면 영화는 불에 의해서 죽고 다시 얼음에서 소생한 것이라고 얘기할 수 있죠. 불과 얼음의 긴장, 픽션과 다큐멘터리 사이의 긴장, 그 감각의 교차가 영화적인 것 혹은 영화의 존재론과도 연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생각의 계기가 된 영화가 바로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열병의 방(2015)>이에요. 두 남자의 러브 스토리인데, 그 중 톰이라는 남자가 얼음을 자르는 공장에서 일해요. 열대 기후의 나라에서 얼음을 자르는 공장 노동자들의 작업 과정을 다큐멘터리처럼 보여준단 말이죠. 그 장면을 봤을 때 굉장히 원초적으로 감각이 충돌되는 걸 느꼈어요. 되게 음란하다. 그래서 열대 지방의 얼음이 주는 감각적인 충격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어요.
태국 공포 영화에 대해서 찾아보다가 흥미로운 구절이 있었는데요. 태국 공포 영화는 자연에서 나오는 귀신을 소재로 하는 경우가 많다는 분석이 있더라고요. ‘호피아’라는 이 활엽수 일종에 속하는 따키얀 나무를 훼손하는 사람들을 해치는 귀신인 ‘피따키얀’을 소재로 한 <프라이따키얀(1940)>이라는 영화가 있고 숲속에 사는 커다란 흰 뱀이 여기로 변하는 <응우피(1966)> 그리고 저주를 받아서 형체 없이 다른 사람의 몸에 빙의되어 날 것을 먹고 살며 아무리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는 귀신 ‘피뻡’(<뻡피화(2000>)이 있어요. 말만 들어도 소재가 재밌죠. 이런 식으로 숲, 자연, 농촌을 배경으로 하는 원혼이나 귀신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태국에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공포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김예솔비
영화를 중심으로 시각예술 전반에 대한 글을 쓴다. 이따금 영화 비슷한 것을 만든다.
황예지
199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수집과 기록을 좋아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랐고 그들의 습관 덕분에 자연스럽게 사진을 시작했다. 사진과 에세이, 인터뷰 등 다양한 형식을 다루며 개인적인 서사를 수집하고 있다. 개인의 감정과 관계, 신체를 통과해 사회를 바라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