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은, 김단비 - 칼을 쥐고 걷는 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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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에서 우리 둘은 이상한 증세를 보였다. 이곳은 처음부터 공간이 사진을 위해, 사진이 공간을 위해 만들어진 듯했다. 공간 자체에서도 역사가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단비는 커다란 중형 카메라를 등에 지고 걸었다. 등 통증을 호소할 만큼 무거웠지만 전시가 계속될수록 중형카메라를 두고 다닐 수 없게 됐다. 좋은 사진이란 카메라를 몸처럼 붙이고 다녀야 나온다는 걸 알기에. 그리고 내 손은 내내 끈적거렸다. 가는 곳마다 세면대를 찾아다니며 손을 닦아냈지만 금세 손이 축축해지면서 끈적거리기를 반복했다. 단비는 내가 자는 동안 끙끙거리는 신음을 냈다고 했다. 질투에 눈이 먼 여자들은 일평균 2만 보를 걸었다.
25.07.10

Jong - 또 다시 마주하며 엮어가는 이야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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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를 돌아다니며 거기에 있었을지도 모르는 흔적에, 시간에, 손길의 흔적들에 너무 몰입해서일까. 이유도 모른 채 글을 너무 많이 써서일까. 낸 골딘의 전시에 너무 마음을 쏟아서일까. 그냥 흐린 날씨 때문일까. 솔직히 모르겠다. 내 안의 24세 청년은 아직도 눈물이 많다. 괜찮다. 일본으로 돌아가 노동과 표현 사이의 일을 하며, 적당히 자신을 속이며 그럴 듯한 아우라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생활로 언제든 돌아갈 수 있다. 언제든 돌아갈 수 있으니 괜찮다. 지금은 이 눈물 많음에 솔직해지자.
25.06.11
Jong - 또 다시 마주하며 엮어가는 이야기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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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쯤이 되면 일제강점기 페이지로 들어간다. 그 시간이 너무 고통스럽다. “쪽바리.” “매국노.” “X새끼'`” “X발.” 의미는 알지만 누구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말들이 교실을 어지럽히고, 내 마음은 조용히 아파온다. 마음이 아프다. 소리 내어 말해선 안 될 것 같은 감각. 그럴 때 나의 도피처는 아침 자율 독서 시간에 읽던 세계 일주를 떠난 여행자들의 에세이였다. 수평선, 지평선을 향한 이유 없는 막연한 동경이 있었다. 방랑과 수집, 이 둘은 섞이지 않는 물과 기름일까? 아니면 서로 잘 어울리는 위스키와 탄산수일까?
25.06.11

김상하 - 손끝으로 더듬는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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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ing Link>는 아버지와 나눈 "이미 사라진 것들을 어떻게 다시 기억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작업이다. 밤섬에 대한 기억과 정보를 5년 동안 추적하면서, 작가가 체득한 '현재를 찍을수록 과거와 멀어진다'는 감각은 무엇일까? 김상하가 밤섬을 집요하게 추적했던 것처럼 DUMMYDUMPYIMAGE에서는 김상하를 집요하게 추적하고자 시도했다.
25.02.27

Sucowania - 사진가를 위한 믹스셋: 김유자의 《Cusp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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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나를 낳았고 / 당신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뒤늦은 깨달음이” 있는 것처럼, 사고의 흐름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특정한 순간에 고정되지 않는다. 우리는 들리는 것과 더 이상 들리지 않지만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 사이를 오가면서, 들리는 것에 의존해 지금 순간의 음악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김유자의 작업이 걷듯이 보는 태도를 통해 이미지 곁의 움직임을 포섭했다면, 음악 또한 걷는 것처럼 흘러간다.
25.02.22

아래로 거슬러 오르는 리서치 연습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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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서치는 특정한 정보에 접근하고, 아카이브를 재검토하고, 주류적인 흐름으로부터 빗겨나가는 탐색이라는 실천에서 정치적이고 미학적인 효과를 자아내는 활동이다. 더 나아가서는 어떤 것의 심층을 향해 파고들기 위해 일정한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는 모순을 마주하는 일이기도 하다. 사진과 영화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황예지와 김예솔비는 남성 지배적 흐름, 제국주의적인 흐름 안에서의 영화와 사진을 비판하고 아시아, 동남아시아, 흑인을 중심으로 흐름을 거슬러 오르는 리서치를 연습한다.
25.02.21

아래로 거슬러 오르는 리서치 연습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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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서치는 특정한 정보에 접근하고, 아카이브를 재검토하고, 주류적인 흐름으로부터 빗겨나가는 탐색이라는 실천에서 정치적이고 미학적인 효과를 자아내는 활동이다. 더 나아가서는 어떤 것의 심층을 향해 파고들기 위해 일정한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는 모순을 마주하는 일이기도 하다. 사진과 영화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황예지와 김예솔비는 남성 지배적 흐름, 제국주의적인 흐름 안에서의 영화와 사진을 비판하고 아시아, 동남아시아, 흑인을 중심으로 흐름을 거슬러 오르는 리서치를 연습한다.
25.02.20
토요일의 여자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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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아무 일도 할 수 없지만, 사진과 사진, 사진과 사진과 사진... 연결은 어떤 일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내겐 연약하고 허술한 사진이 필요하다. 잘 부서지고 손끝에 전기가 오르는, 이 하찮음이 어쩌면 일회용 필름 카메라의 역량은 아닐까.
25.01.18
토요일의 여자들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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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쓰려는 것은 2024년 12월 3일의 윤석열 계엄 선포 이후 진행되고 있는 범국민촛불대행진의 날에 촬영된 사진들이다. 여러 대의 일회용 필름카메라를 페미당당 심미섭과 그의 친구들, 투명가방끈 활동가 연혜원, 청소년성/노동연대 부라자 활동가 강모래, 지뢰계 김미카, 익명의 샤이니 팬, 시인 박규현, 엄마 전다정에게 보냈고 그들에게 집회 순간을 촬영할 것을 요청했다.
25.01.18
이강희 - 농락 혹은 오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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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서 오랫동안 생각해 왔다. 글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내 글이 밖으로 나와야 한다면 그 필요는 무엇일까, 스스로 질문한다. 아직도 확신은 없지만, 엄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그 필요라 짐작한다. 나의 글은 대물림되는 우울과 알코올 중독, 폭력에 대한 증언이다. 부모가 괴물이면 자식도 괴물인가?
25.01.14

현다혜, 황예지, 황지원 - 다시 사진으로, 회귀하는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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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회귀하는 사진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은 꽤 긴 시간 동안 사진 작업을 회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기나긴 침묵을 이어가던 중 다소 이질적으로 찍힌 현다혜 작가의 사진을 보았다. 아, 사진을 언어로만 설명하는 건 불가능하구나. 더군다나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만들어진 단어가 없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전시를 통해 사진을 보여주고, 말함으로써 사진의 언어를 조금이나마 형성할 수 있을까.
25.01.09

김승일 - 웃음: 황선미의 일인극 《크루아상》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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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연 내내 황선미는 해체되었다가 재조립되기를 멈추지 않는다. 황선미의 대사에 따르면, 황선미가 죽었다가 살아나려고 하는 이유는 먼 과거로 흩어지기 위해서다. 흩어졌다가 다시 조립되는 방식으로만 다음(미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과거에 대한 애도의 한 방식이면서 생존의 수단이다. 파편화하지 않으면 그러모을 수 없다. 반복해서 부수지 않으면 온전해질 수 없다.
24.12.10

비상계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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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이 12월 3일 오후 11시 비상계엄령을 선포하였다. 상업 사진과 비상업 사진, 다양한 장르를 다루는 젊은 사진가들이 국회 앞으로 뛰쳐나가 사진을 찍었다. 긴급한 사진-이와 같은 현장 사진은 시대의 망각을 돕는 단초가 될 것인가. 민주화 운동이라는 잉걸불에 다시금 불씨를 지피는 결속의 도구가 될 것인가. 사진이라는 시각 권력. 계엄령 선포와 해제까지 여섯 시간. 더미덤피이미지는 미심쩍은 시대에 선연한 성명과도 같은 젊은 사진가들의 여섯 시간과 그 사진들을 아카이브 하고자 한다.
24.12.05

비상계엄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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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대한민국 내부에 암약하고 있는 반국가세력의 대한민국 체제전복 위협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2024년 12월 3일 23:00부로 대한민국 전역에 다음 사항을 포고합니다.
24.12.04

연혜원 - 훼손되는 사진들 사이에서 흔들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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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되어버린 과거를 손으로 만지고 줄이고 늘리고 찢고 접고 붙이고 중복하고 대량생산 해내기. 기억을 손으로 만져보기, 쓰다듬기, 다시 쓰다듬기… 기억을 가지고 놀아보아야만 우리는 기억과 관계 맺는 법을 알 수 있지 않을까? 만질 수 없이 벽에 걸린 사진을 볼 때마다 사진과 어떻게 관계 맺어야 할지 우물쭈물하게 되는 것도 그것을 훼손해 볼 수 없기 때문인 것은 아닌가?
24.11.21

김병규 - 어떻게 실종될 것인가: 이손의 《표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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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누군가는 반문할지도 모른다. 타인의 실종이라는 실제 사건을 예술적 주체인 ‘나’의 실종에 접속시키는 사진의 방법론은 도덕적으로 타당한 것인가? 나는 이 가상의 반문을 기각할 것이다. 이손의 실종은 사진의 무력함을 흔들어 깨워 적극적으로 타인을 가시화하는 절실한 장치이기 때문이다. 이손은 사진의 관점에서 인간적 도덕을 기각한다. 자크 랑시에르가 말하듯이 “실재 자체는 없”기 때문이다.
24.10.05

양경준 - 절벽이 있는 아파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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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인생이 바뀌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사진을 그만두는 일도 없었다. 직장을 다니며 주말엔 사진을 한다. 삶은 7년 전, 절벽에 아등바등 매달려 있을 때와 다르지 않다. 벼랑 위에 올라서는 정복감과 손에 힘이 풀려 저 멀리 떨어지는 불안감이 번갈아 뒤쫓아온다. 평생 이렇게 살 것 같은 우락부락한 직감이 드는 건 다행일까, 불행일까.
24.07.27

정어진 - 예지를 응원하기, 그녀가 계속 시끄러울 수 있도록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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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때제때 도착해야 할 이야기들이 있다. 조금 지연 되더라도 너무 늦지는 않게 발행되어야 할 이야기들이 있다. 여기까지 읽어준 독자라면, 이 응원에 동참해 주기를 바란다. 어떻게 동참할 것인가? 찾아가서? 읽어서? 써서? 퍼트려서? 찍어서? 그려서? 연주해서? 빚고 만들어서? 이제 그 일을 당신의 몫으로 요청하고 싶다.
24.07.27

정어진 - 예지를 응원하기, 그녀가 계속 시끄러울 수 있도록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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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장마의 초입에서 예지를 만났다. 거센 빗줄기를 핑계로 만남이 미뤄질 뻔 했지만 “역시 오늘 만나는 게 좋겠어.”라는 예지의 말에 결심을 굳히고 만나 커피를 마시며, 이건 예지가 보광동에 살고 나는 이태원동에 살아 가능한 일이라는 걸 알았다. 예지가 계속 거기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4.07.27

이 손 - 알람을 맞춰두고 지르는 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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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불편함에 이끌려 현수막을 찍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사진 뭉치를 낯선 사람들에게 한번 보여준 뒤로 그것을 찍는 것은 그만두었다. 내가 보는 대로 다른 이들도 보리라 기대했지만 이런 식으로는 불가능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채로, 내가 그것에 느끼는 감정과 감각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모르는 채로 시간을 보냈다. 이대로 지나가기는 힘들었다. 이 도시에 사는 이상 그것을 마주치는 일은 피할 수 없고, 가시를 뽑아낼 수 없다면 더 깊숙이 박아 넣기라도 해야 했다.
24.07.12
김정기 - 우울의 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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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행성만큼이나 무거운 침대의 중력장에서 벗어나는 일. 내 우울함이 매일 아침에 툭 던져 놓는 가장 힘든 일이었다. 쇳가루가 자석 주위에 곡선을 만들 듯 우울 알갱이가 내 몸의 입, 눈, 귀 수많은 구멍을 관통하고 지나가 침대의 중력장에 폐곡선을 그렸다.
24.06.08

박민지 - 몸이 사라진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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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실에 들어가면 편안해요. 고요한 정적이 좋고. 단순한 행동을 반복하면서 아무 생각이 없어지는 것도 좋아요. 수행하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요. 암실에는 아예 암등이 없는 공간도 있는데요. 거기서는 내 몸이 사라진 느낌이에요. 내 손을 보고 있는데도 보이지 않는 것이 좋아요.
24.05.10

양지훈 - 애처로운 포수의 몸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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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제작 목적에 ‘알리는 것’과 ‘조망하는 것’이 있다면 다큐멘터리는 아직 설득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꾸 똑같이 안전하게 뽑아내면서 우리들 잔치로만 만들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이걸 해냈어. 잘했다. 다음에 또 하자. 똑같은 거 또 하고. 그게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24.04.11

상실사진 이후의 대담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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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29일, 인파가 몰린 이태원에서 참사가 일어났다. 참사의 이미지는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고 많은 이들이 고통을 호소했다. 반복되는 참사, 이미지 생태에 문제의식을 느낀 사진가들이 모여 <상실사진>이라는 사진 추모 행동을 벌였다.
24.03.10

상실사진 이후의 대담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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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29일, 인파가 몰린 이태원에서 참사가 일어났다. 참사의 이미지는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고 많은 이들이 고통을 호소했다. 반복되는 참사, 이미지 생태에 문제의식을 느낀 사진가들이 모여 <상실사진>이라는 사진 추모 행동을 벌였다.
24.03.10

전솔비 - 세 개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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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난민캠프라고 불리는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로힝야 캠프의 중심과 주변을 왕복하며 가장자리와 구석을 따라 걷던 시간을 복기해본다. 기억하기 위해 기록을 멈추고, 기록하기 위해 기억을 멈추던 순간들.
24.03.10

김예솔비, 홍진훤 - 길 잃은 제비와 표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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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8월 어느 습한 여름날에 만났다. 홍진훤 작가는 <멜팅 아이스크림> 이후 새로운 영상 작업을 준비 중이었고, 나는 종종 영화에 관한 글을 쓰며 대학원 졸업 영화를 만들고 있었다.
24.03.02

홍지영 - 교토로의 사진 여행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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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폭력적인 전시 감상 뒤로는 급격하게 우울증이 도졌다. 걸으면서 울고 밥 먹으면서 울고 호텔 방에 처박혀서 울고 아림에게 매달려 전화 받아 달라고 하며 멀리서도 아림을 괴롭혔다.
24.03.01

홍지영 - 교토로의 사진 여행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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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봄에는 유난히 선명한 꿈들을 많이 꾸었다. 깨어 있는 시간이 아주 적었다. 평생 못 잔 잠을 몰아서 받기라도 한 듯 잠을 잤고, 꿈을 꿨고, 암실을 갔다. 살아서 겪는 삶보다 생생한 이미지가 벌떡 일어나 눈 뜨고 있는 나의 온몸을 갈겼다.
24.03.01

강지웅 - 작고 다난한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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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 들어갔을 때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폐허인데 금방이라도 누가 있었던 것처럼 아늑한 느낌. 할아버지 집에 놀러 온 것 같기도 하고.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공간이라고 해도 설득력 있는 느낌. 섬이 주는 따뜻함. 그 느낌이 사진 찍을 때의 태도에 영향을 준 것 같아요.
24.03.01